눈물이 사랑이라면. 눈물로 퉁퉁 분 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이불 속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것이 사랑이라면.
저는 사랑을 하고 있노라고.
*
처음 피터 파커가 해리 오스본에게 그만 두고 싶다고 했던 건 해리의 위에 앉아 허리짓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쁜 숨 사이로 피터는 못 하겠어, 중얼거렸다. 해리는 못 들은 척 '직접' 허리를 움직이며 피터의 입을 막았다. 이걸 못 하겠다는게 아니잖아, 해리. 속으로만 삼켜내며 피터는 숨을 뱉어내었다.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야, 까지 생각하던 피터는 해리의 매서운 눈빛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생각하지말자.
해리는 피터가 자신을 떠나지 못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것은 유일한 확신이었다. 피터는 늘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알싸한 허리를 문지르며 일어난 피터는 허벅지 사이로 꾸덕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작게 욕을 뱉었다. 안에 하지 말라니까.
해리는 항상 그랬다. 피터를 휘둘러댄다. 아니, 자신이 휘둘리는 것일지도. 지친다며 애원해도 해리의 눈만 바라보면 그 말은 쑥 들어가 자취를 감춰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터 피커는 멍청했다.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만나다니. 어떻게 해야하느냐,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싶을 정도였지만, 해리는, 연애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해리가 피터 몰래-라고 해봤자 싸구려 가쉽지만 들춰보면 1초만에 알 수 있었다-만나는 그녀들은 뭐, 모르겠다. 그녀들은 해리의 돈을 보고 만나는 걸 테니까. 돈을 보고 만나는, 그런 건 연애가 아니니까. 해리와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피터는 늘 외로웠다. 그러면서도 사랑한다면, 그건 또 모르겠다. 사랑? 이 것이 과연 사랑일까.사랑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자신은 해리에게 그저 시계 속 톱니바퀴 같은 존재 아닌가.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다가, 필요할 때만 '오, 이게 있네.' 하다 다시 잊어버리는. 피터는 어젯 밤 쥐어뜯어 마구 구겨져 있는 시트를 당겨 허벅지 사이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속옷을 꿰차입었고, 바지 지퍼를 올렸다. 싸구려 창녀들. 그들과 자신은 뭐가 다른지.
그럼에도 피터는 해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떠날 수 있을까? 피터는 문고리를 잡으며 생각했다. 글쎄. 끼익, 문이 열렸고, 피터는 다시 먼지 속에 던져졌다.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빌빌거리며 살아야 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선 우선 남의 배를 채워줘야 한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문은 닫히지 않았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피터는 자신이 영영 떠나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나쁜 세상이다.
오, 제 종교 말인가요? 제 종교는 해리 오스본, 신도는 저 혼자 뿐인데 또 모르죠. 어쨌든 전 해리 오스본에 미쳐 있어요. 씨발, 난 해리 오스본에게 존나 미쳐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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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오스본. 노만 오스본의 하나뿐이던 연인. 반쪽. 자신을 두고 떠난 제 어미에게 시위하듯 노만은 어렸던 해리를 제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손에 쥐어주고는 떠나버렸지. 해리는 누구를 탓해야할지 늘 고민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아내를 죽인 살인자에게 젖병을 물리던 젊은 오스본-물론 실제의 그는 분유 온도 재는 법도 모를것이라고 해리는 호언장담했다.-, 혹은 산열에 들떠 죽음에 집어삼켜진 가녀린 레이디 오스본?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노만이 제 어미에게 뺨이라도 호되게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즐거워졌고, 세상에 하나 남은 오스본은 웃었다. 자아, 부모님. 재판합시다.
해리 오스본에게 피터 파커가 처음으로 그만 두고 싶다고 했던 건, 피터를 위에 앉혀두고 스스로 허릿짓을 시켰을 때였다. 피터를 상처 줄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지만 입술만 달싹일 뿐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래서 결론을 말 하자면, 해리는 못 들은 척을 했다. 해리에게 피터는, 조금 못 되게 말하자면 벌리라면 벌리는 편한 섹스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서로 좋은 이해관계. 피터는 해리가 좋으니 다리를 벌리고, 해리는 피터의 몸이 필요하니... 까? 과연 몸만 필요한가. 해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요즘 많이 피곤했지.
해리가 샤워를 끝 마치고 나왔을 때, 그 비싼 문의 경첩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해리 오스본은 홀로 남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해리는 웃었다. 언제나 그러듯이.
불행은 늘, 알아차리면 등 뒤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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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해리 오스본은 깨달았다. 이 감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해리에게는 꿈과도 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 이라는 단어의 간질거림은 파충류라 불리는 오스본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 누구나 표현하듯이. 암묵적인 계약이라도 되어있는 것 아냐, 해리는 이 멍청하고 진부한 표현을 만들어낸 사람을 찾아내 뺨이라도 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대신 해리는 피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시큰한 고통에 피터는 해리를 돌아보았다. 피터의 눈가는 잔뜩 벌게져 있었다. 어째서 네가 우는 거야.
피터.
놔, 해리.
나에게서 등 돌리지마, 피터 파커.
이 손 놓는게 좋을거야, 해리 오스본.
왜? 왜 그만두자는 건데?
놓으라고.
이유가 뭔데!
난... 네가. 아냐, 아냐.... 제발... 제발 놔줘.
피터는 해리와의 이별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은 저녁은 피자를 먹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그만두자, 라고 말한다. 해리는 난 다른 걸 먹고 싶어, 라고 말하듯 그래, 라고 말하고. 그리고 서로 왔던 것처럼 조용히 돌아가는. 그게 피터가 바라는 이상적인 이별이었다. 그래서 해리의 이런 반응은 조금, 아니-아주 많이 이상했다. 예상과 달리 질척하며 처절했고, 자신은 울고 있으며, 해리는 우는 자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피터 파커의 세상은 무너졌다. 네가 왜? 네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말해주겠는데, 이제는 질렸거든. 난 네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더는 없어, 해리.
...잘 있어.
피터는 손목을 비틀어 빼내었다. 해리는 다시 붙잡지 않았다. 피터는, 조금은 아쉬운 자신이 싫어졌다.
안녕, 해리. 네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쾅.
문이 닫혔고, 피터 파커는 떠났다. 해리 오스본은 홀로 남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나 해리는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해리 오스본은 깨달아 버렸다. 피터 파커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누군가 묻는다면 이제는 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사랑을 했노라고.